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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나는 공사판 인부가 된 걸까 - 임계장 이야기, 조정진, 후마니타스, 2020

by 길찾기91 2022.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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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사판 인부가 된 걸까

 

대공사가 벌어졌다. 지상 주차장을 비롯해 아파트 마당을 모두걷어 내고, 새로 아스팔트 포장을 하는 공사다. 공사를 하려면 사전에 지상 주차장의 차량을 모두 옮겨야 한다. 공사 예정일며칠 전부터 500명의 차주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고, 전화 연결이 안 되면 각 세대를 방문해 사정했다.

 

○○0시까지 차량을 옆 동으로 이동해 주세요.”한 집은 인기척이 있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고 벨을 눌러도 대답이 없어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연 주인은 대뜸 욕부터 했다.

 

"웬 경비가 아침부터 대문을 발로 차고 지랄이야?"

 

나는 노크를 했을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차를 이동할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관리사무소에서는 아파트에 인접한 도로에 주차를 하도록 유도하라고 했다. 하지만 도로에 밤샘 주차를 하면 견인 당할수 있다. 견인을 당하거나 범칙금을 물게 되면 그렇게 하도록 안내한 경비원은 멱살잡이를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견인료와 범칙금을 변상하라는 주민도 있을 것이다.

 

결국에는 도로변마저 주차할 곳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주차할 곳을 마련해 줘야 이동시킬 수 있다는 주민들의 항변에는 일리가 있었다. 차들이 마구 뒤엉키자 주민들은 관리소장을 몰아세웠다. 관리소장이 항변했다.

 

자치회가 주관하는 공사입니다. 저는 억울합니다."

 

"자치회가 잘못하면 소장이 말려야지. 그런 일 하라고 월급주는 거 몰라?"

 

누가 옳은지 나는 모른다. 피곤하고 지쳐서 그저 눕고 싶을 뿐이었다. 관리사무소는 답변이 궁해지자 경비원을 달달 볶았다. 관리실이 대책이 없으면 경비원도 대책이 없다. 그러나 관리실을 대신해 욕을 먹는 일은 늘 경비의 몫이었다. 그날 하루 내게 항의를 한 운전자들만 수백 명이었다.

 

아스팔트 포장 공사는 2주가 걸렸다. 평생 마실 먼지와 평생 먹을 욕을 다 받아 낸 것 같았다. 흩날리는 아스팔트 가루를 마시며 하루 11시간을 서서 근무했더니 금세 허기가 졌다. 새참이라도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더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나 관리사무소에서 그런 배려를 해줄 리 없었다. 관리사무소는 외부 업체가 도급을 받아 하는 공사이므로 새참을 주는 것도 공사업체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했다.

 

밤이 되자 다리가 너무 아프고, 기름 냄새와 아스팔트 가루 때문인지 두통에 어지럽기까지 했다. 나는 경비 업무 일지에 오늘의 근무를 요약해 적었다.

 

"10시간 이상 아스팔트 분진과 악취 속에서 종일 서서 근무." 관리소장은 다음 날 일지를 결재하면서 내가 써 놓은 글귀 아래 "실제와 다름이라고 빨간 사인펜으로 이의를 기록해 놓았다. 그도 양심은 있는 것일까. 평소 같았으면 (경비원에게 '잡역을 시켜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일지에 '청소'라는 단어만 써놓아도 당장 다시 써오라고 난리를 치던 사람이다.

 

아스팔트가 새로 다 깔리자 차들은 원래의 주차장으로 복귀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새로 깔린 아스팔트 위에 하얀 페인트로 주차선을 그어야 한다면서 차량들을 몽땅 다시 이동시켜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아스팔트를 새로 깔면 당연히 주차선도 새로 그어야 하는데 관리사무소가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차량들을 이동시켰던 것이다.

 

자치회 임원들도 경비원들도 모두 놀라서 소장만 쳐다봤다. 관리사무소장의 얼굴이 하얘졌다. 차를 다시 이동시키는 일이 어떤 것인지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리라. 차량을 옮기는 일이 또다시 되풀이됐다. 물론 먼젓번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욕을 들어야 했다.

 

아스팔트 포장 공사는 분진과 악취 때문에 노무자의 일당이 25만 원이나 된다고 했다. 14일의 공사기간 동안 매일 경비원이 4명씩 동원됐으니 인건비는 그만큼 줄었을 것이다.

 

공사는 끝났지만 한동안 하자 보수 공사가 이어졌다. 새 아스팔트 바닥의 여기저기가 소보루 빵처럼 부풀거나 움푹 팬 곳이 많아 보름이 넘도록 땜질이 계속됐다. 물론 경비원들은 그때마다 차량을 이동시켰다.

 

공사업체는 진득거리는 검은색 액체를 뿌려 땜질 자국을 감추려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주민들은 멀쩡한 새 옷을 사놓고, 누더기를 만드는 꼴이라 했다. 도급을 맡은 건설 업체는 주민들 앞에서 주차장을 춘향이 낮바닥처럼 반드르르하게 만들겠다"고 공언했단다.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자치회 임원들은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경비원의 눈물과 땀이 섞여 새로 단장된 주차장은 그래도 보기에는 좋았다.

 

임계장 이야기, 조정진, 후마니타스, 2020, 9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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