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뇌는 바보
우리 인간의 사고방식은 확실히 독특하다. 그건 분명한 것 같다. 우리 종은 이름부터 '호모 사피엔스', 즉 라틴어로 '현명한 사람'이지 않은가(인정하자. 우리 종의 특징을 겸손함으로 꼽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한 것이, 인간의 뇌란 참으로 놀라운 기계다. 우리는 주변 환경에서 일정한 패턴을 발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물이 돌아가는 원리를 짐작하며, 그러면서 세상을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포함해 복잡하게 머릿속에서 모형화한다. 그리고 머릿속의 그 모형을 점점 키워나가다가 상상의 힘으로 도약을 감행한다. 세상을 어떻게 바꾸면 살기가 더 나아지겠다 하는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아이디어를 남들에게 전할 수 있고, 그러면 남들이 또 우리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아이디어를 개선한다. 이런 식으로 지식과 발명을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 이제 개인이 상상만 하던 아이디어도 사람들을 설득하여 함께 구현해나갈 수 있고, 한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던 혁신을 낳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오만 가지 형태로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한때의 혁신이 전통이 되고 전통이 또 새로운 혁신을 낳다 보면, 결국 '문화' 또는 '사회'라고 하는 것이 생겨난다.
쉽게 말하면 이런 단계로 진행된다. 하나, 둥그런 물건이 모난 물건보다 비탈을 잘 구른다는 것을 발견한다. 둘, 도구를 써서 모난 물건을 둥그렇게 다듬으면 더 잘 굴릴 수 있음을 깨닫는다. 셋, 둥근 물건을 만들어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친구가 똑같은 것을 네 개 갖다 붙여 수레를 만든다. 넷, 전차 군단을 만들어 왕의 위엄을 과시하고 백성들이 왕을 존경하면서도 까불지 않게 한다. 다섯, 고급 세단을 몰고 소프트 록 명곡 모음에 심취해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길을 막는화물 트럭에 쌍욕을 한다.
오해를 막기 위해 보충 설명을 하자면, 위의 서술은 바퀴의 발명과정을 아주 부정확하게 과장한 것이다. 사실 바퀴의 발명은 인류사 전체로 볼 때 굉장히 늦게 이루어졌다. 인류 문명은 수천 년 동안 바퀴 없이 그럭저럭 돌아간 것이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바퀴는 약 5,500년 전에야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운반에 쓰인 것도 아니라 도공의 물레였다. 그로부터 또 수백 년이 지나서야 누군가가 '물레를 모로 세우면 물건을 굴리는 데 쓸 수 있다'는 기발한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긴 역사 끝에, 급기야 각종자동차로 기행을 벌이는 TV 예능 프로그램이 출현하기에 이른 것이다. 앞의 서술은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서였으니 불편하셨던 바퀴 연구가가 있다면 사과드린다.
아무튼 이렇게 훌륭하면서도 참으로 희한한 것이 인간의 뇌여서, 꼭 최악의 타이밍에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늘상 한심한 결정을 내리는가 하면, 터무니없는 것을 믿고, 코앞에 뻔히 있는 증거를 무시하거나 턱도 없는 계획을 세운다. 우리 머리는 교향곡을 작곡하고 도시를 계획하고 상대성이론을 생각해내지만, 가게에서 포테이토칩 하나를 살 때도 무슨 종류를 살지 족히 5분은 고민해야 겨우 결정할 수 있다.
인간의 머리는 어떻게 세상을 주름잡고 기상천외한 일들을 해내면서도 동시에 누가 봐도 어이없는 최악의 결정을 날마다 내릴 수가 있을까? 한마디로 우리는 어떻게 달나라에 사람을 보내면서, 옛날 애인에게 그런 한심한 문자를 보내는 것일까? 모든 것은 우리 뇌가 진화한 방식에 기인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진화라는 과정은 영리함과 거리가 멀다. 멍청할 뿐 아니라 아주 고집스럽게 멍청하다. 진화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래저래 죽을 수 있는 수천 가지 시나리오를 피하고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잘 넘어갈 때까지만 죽지 않고 사는 것, 그것뿐이다. 그렇게만 되면 성공이다.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다시 말해 진화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 '지금 당장' 이익이 되는 특성은 무조건 선택된다. 그 결과 훗날 9대손쯤에서 너무 구닥다리 특성으로 고생하지 않을지 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미래를 내다보고 반영한다든지 하는 것도 물론 전혀 없다. 이를테면 “아, 이 특성은 지금은 좀 거추장스러워도 100만 년 후에는 후손들한테 진짜 유용하겠군. 좋아, 선택하자", 그런 경우는 없다. 진화의 원리는 앞을 내다보는 것이 아니다. 그냥 먹을 것과 짝짓기에 굶주린 개체들을 인정사정없는 세상에 무진장 많이 풀어놓고 누가 제일 덜 망하나 보는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뇌는 최고의 사고 기계를 목표로 세심하게 설계한 결과물이 아니라, 그저 요령과 땜질과 편법을 덕지덕지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 모든 것은 예컨대 우리의 먼 조상이 먹을 것을 찾는데 2퍼센트 더 유리했거나, 아니면 '앗, 조심해, 사자야!'라는 개념을 전달하는 데 3퍼센트 더 유리했기에 선택된 요령들이다.
그렇게 별 생각 없이 손쉽게 판단을 내리기 위한 요령 내지 편법을 조금 어려운 말로 '휴리스틱'이라고 한다. 이 휴리스틱이 없으면 우리는 생존할 수가 없다. 남들과 소통할 수도, 경험을 통해 배울 수도 없다. 알고 있는 원리 몇 개를 놓고 어떤 행동을 할지 일일이 추론해 결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침이면 해가 뜬다'는 상식을 깨닫기 위해 머릿속으로 대규모 무작위 대조 실험이라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인간의 머리가 그렇게 되어 있다면 인간은 도저히 발전이 불가능 했을 것이다. 해가 몇 번 뜨는 걸 보고 나면 그냥“아, 아침엔 해가 뜨는구나" 하고 깨닫는 편이 훨씬 실익이 크다. 또친구가 호숫가 풀숲에서 자주색 열매를 따먹었더니 배탈이 심하게났다고 하면, 그 말을 믿는 편이 낫지 굳이 직접 시험해볼 필요가없다.
그렇지만 여기서 문제가 시작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뇌가 사용하는 편법들은 유용하긴 하지만, 모든 편법이 그렇듯 엉뚱한 결과를낳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세상일이란 '자주색 열매를 따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보다 훨씬 복잡한 법이니 오류는 왕왕 일어난다. 까놓고 말해 우리 뇌는 바보 중의 상바보 짓을 할 때가 적지 않다.
인간의 흑역사, 톰 필립스, 윌북, 2019.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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