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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성을 향한 진화? : 글로벌 생산의 감춰진 진실
2017년, 캄보디아의 벽돌 가마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어느 노인이 천이 담긴 가방을 맹렬히 타오르는 용광로 안으로 쉴 새 없이 던져 넣고 있었다. 낮은 굴뚝에는 검고 두꺼운 연기가 맴돌고 있었고, 불꽃 아래로는 플라스틱이 녹은 물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꾸물꾸물 흘러가고 있었다. 노동자인 아버지를 따라 간간이 일하러 나오는 어린 소년 노동자가 기침을 하다가 라벨 더미들을 헤치면서 20피트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알루미늄으로 지은 집으로 향했다. 소년이 헤치고 지나간 라벨 더미들 중에는 몇 주 전 내가 런던의 의류 매장 선반에서 보았던 라벨들도 있었다.
인지 부조화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탄소 배출, 환경저하, 글로벌 생산, 그리고 빈곤이라는 문제가 결합된 이와 같은 장면들은 전 세계 곳곳에서 매일 수백만 번 되풀이되는 장면이다. 문제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이라는 시각에서는 이런 장면들이 결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의 눈에는 글로벌 생산이 단순하고, 깨끗하며, 마치 탈탄소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즉 글로벌 생산의 세계는 현지 환경을 파괴하면서 탄소집약적 생산을 하고 있지만 규제에서 벗어나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세계는 전 지구적인 탄소 배출에 맞서 싸우는 우리의 능력을 무력화할 뿐 아니라 더 작은 규모로 발생하는 영향을 글로벌 생산의 공급망이라는 복잡한 물류 속에 감춘다. 바로 이 감춰진 글로벌 생산의 세계가 기후붕괴에 맞서는 싸움의 새로운 전선이다.
글로벌 생산의 세계가 감춰지게 된 것은 지난 반세기 동안 부유한 사회와 국가에서 진행되어온 어마어마한 변화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국가들은 곧 세계 최대 제조국들로서, 티셔츠와 토스터기 같은 일상의 재화를 직접 제조해 자국의 시장에 판매했다. 그러나 이제 부유한 국가의 소비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제품은 해외에서 생산된다. 전 세계 국가들이 해외에서의 생산 활동을 확장하고 심화하면서 공급망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국제화되었다. 이제 의류 매장의 옷걸이에서 고를 수 있는 의류가 온전히 하나의 국가에서 비롯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의류는 다양한 경작지, 다양한 공장, 다양한 국가를 거쳐 가공된다.
이런 식의 생산은 비용을 낮추고 효율성을 높이지만 모호성을 초래한다. 공급망이 길어질수록 꾸준하게 추적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중개인이 늘어날수록 감독은 더 줄어든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중개인들이 국경을 넘나들 때 물류 검문소는 물론 법적 세계와 정치적 세계도 함께 넘나든다는 것이e. 번화가의 소매점에서 '메이드 인 베트남' 표식이 붙은 토스기를 구입했다고 생각해보자. 이 토스터기는 어떤 환경 기준을 준수하는가? 조립 공정은 베트남의 기준을 준수할지 모른다. 그러나 표준적인 토스터기에 들어가는 157가지의 부품은 베트남을 그저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다. 이 토스터기에 사용된 강철, 아연, 플라스틱, 구리, 니켈 중 니켈에 대해서만 생각해보자. 매장에서 구입한 토스터기에 사용된 니켈의 생산지는 어디인가? 분명 베트남은 아닐 것이다. 베트남은 오직 하나뿐인 니켈 광산을 드문드문 운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도네시아가 현재 전 세계 니켈의 약 3분의 1을 생산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 토스터기에 사용된 니켈은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었을 가능성이 꽤 높다. 여기서 중요한 진실은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악몽은 그것을 아는 사람이 누구인지 수소문할 때부터 시작된다. 상점 주인도 모르고 심지어 제조사조차 모른다. 양자 모두 대개 제품의 공급망을 직접 감독하지 않기 때문이다. 베트남에 위치한 조립 공장조차 모른다. 부품을 어디에서 구입했는지는 알지만 부품에 사용된 원자재의 출처는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부품을 만든 사람들조차 부품에 사용된 원자재의 출처를 확신하지 못할지 모른다. 대부분의 경우 중개 공급업체를 통해 원자재를 구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합법성의 문제를 고려하기 이전의 이야기이다. 비록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가 모종의 환경 기준과 노동기준을 비준하긴 했지만, 이런 기준의 집행 여부와 집행 수준은 국가마다 천차만별이다. 글로벌 남반구에 자리 잡은 많은 국가들은 엄격하게 모니터링할 역량이 없다. 모니터링을 수행하는 국가라고 하더라도 부패는 드문 일이 아니다. 부패라고 하면 (유럽의 공장들이 수 세기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현지의 하천에 폐수를 방류하는 행위를 의미할 수도 있고, 그 공장들이 만드는 재화를 수입하는 국가에서는 용납하지 않을 법한 오염물질을 대기에 배출하는 행위를 의미할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이런 유의 환경적 불평등은 주요한 위반 행위이지만 소비자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위반 행위가 명시적으로 기록되지 않을뿐더러, 그마저도 소비자에게는 압축적인 형태로만 전달되기 때문이다. 의류를 생산하는 공장이 인근의 호수로 이어지는 하수관에 접착제와 염료로 가득한 폐수를 쏟아버린다는 것은 라벨에는 절대로 기록되지 않는다. 애당초 이런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조차 없다. 일반적으로, 공장이 국가 기준을 준수한다고 주장하면 그것만으로 추가 조사가 필요없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재앙의 지리학> 로리 파슨스, 오월의봄, 2024,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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