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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과 야스쿠니
일본의 신도(神道)라는 것은 종교적으로 불교 및 유교가 도교와 합쳐졌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모든 사물에는 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황실의 조상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처럼 정말로 신화에 나오는 신을 모시거나, 죽은 인간을 신으로 모시거나, 신이라고 여기는 사물을 모시기도 합니다. 이는 일본 모든 신사의 특성인데, 야스쿠니의 경우에는 일본 국가를 위해 전쟁에서 죽은 군인들의 혼을 모아 신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전쟁 중은 물론 전쟁 후에도 많은 일본인들이 죽은 자식이나 남편이 생각날 때 야스쿠니를 가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민중 속에 야스쿠니 신사가 존재해왔다고 볼 수 있지요. 그들은 야스쿠니와 함께 전쟁을 치렀고 야스쿠니와 함께 살아왔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야스쿠니, 천황제, 메이지유신이 모두 150년 되었다고 했는데, 그만큼 야스쿠니는 메이지유신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 유래를 간단하게 살펴보지요. 1853년 미국의 페리 함대가 무력으로 개항을 요구하자 막부정권은 이에 굴복에 1854년에 미일화친 조약을 맺게 됩니다. 그때 일찌감치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세력은 막부의 무능함을 깨달아 막부 타도를 외쳤고, 반대편에는 막부를 지키려는 자들이 모여 대립을 시작했지요. 결국 일종의 내전을 거쳐 1868년 메이지 천황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체제가 만들어졌고 에도막부 세력은 메이지 천황의 체제 속으로 들어가는 정치 형태가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메이지혁명이 아니라 메이지유신이라고 합니다. 유신(Restoration)이라고 했던 것은 막부정권이 붕괴되지 않고 재편입되었기 때문이지요.
1853~68년 기간에 천황을 지지하는 많은 사무라이들이 막부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메이지유신 1년 후인 1869년에 천황은 '메이지 천황제'를 만들기 위해 전국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들의 혼을 다시 불러들여 추도하겠다고 이야기했지요. 그래서 같은 해에 도쿄에서 먼저 초혼제(招魂祭)를 지내고 초혼사(招魂社)라는 신사를 만듭니다. 초혼제는 전국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현재 일본에는 야스쿠니 신사를 포함해 각 지역에 호국 신사라고 불리는 곳들이 있는데, 이 호국 신사들은 다 초혼제를 지낸 곳들입니다. 이로부터 10년 후에 도쿄에 있는 초혼사의 이름을 바꿔서 야스쿠니 신사라고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야스쿠니 신사는 근대 천황제와 동시에 생겨났고, 이로부터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민국가가 만들어졌습니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근대국가가 시작된 것입니다. 서구에서는 30년 전쟁이 끝나고 만들어진 베스트팔렌조약에 기초해서 처음으로 근대국가가 생겼다고 하듯이,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통해서 처음으로 근대국가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야스쿠니를 폐지하라는 말은 천황제를 폐지하라는 말이고, 나아가 근대국가 일본을 해체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야스쿠니 폐지라는 주장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일본 수상을 반기지 않는 야스쿠니?
천황제와 함께 시작된 야스쿠니는 수많은 전쟁을 거치며 또 다른 특징을 갖게 됩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에 길게는 10년 짧게는 5년마다 새로운 전쟁을 수행해왔습니다. 큰 전쟁만 살펴봐도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1914년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 후의 시베리아 출병,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아시아태평양전쟁 등 일본은 끊이지 않고 전쟁을 이어왔습니다. 이 많은 전쟁을 해나가기 위해서라도 일본은 계속해서 국민들의 전의를 고양시키지 않을 수 없었지요. 야스쿠니는 국민의 전의를 끌어올리는 데 큰 효과를 내는 기구였습니다. 죽은 자들을 신으로 삼아 야스쿠니에 이른바 합사(명부에 신으로 이름을 올리는 것)를 하고, 매년 봄과 가을에 천황이 직접 와서 그들을 위한 위령행사를 치렀습니다.
야스쿠니의 역사가 150년이라는 사실은 또 다른 관점에서 중요합니다. 야스쿠니 신사라 하면 국가를 위해 죽은 병사들을 기리는 곳이라고 오해하지만, 정확히 이야기하면 국가가 아닌 천황을 위해서 죽은 이들만이 합사될 수 있었습니다. 천황을 배신한 인물이라면 누구도 야스쿠니에 합사될 수 없었지요. 그것도 오직 1853년부터 1945년 사이에 천황을 위해 죽은 자들만이 야스쿠니에 합사되었습니다. 그 수가 약 246만 6,000이며, 이들은 하나의 영혼으로서 신이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위해 죽은 병사들이라 천황은 전전은 물론 1945년 8월 15일 이후에도 봄과 가을에 예제(祭)를 지내게 하고 스스로도 참여해왔습니다.
천황이 전후에도 계속 추모를 했다는 사실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야스쿠니에 합사된 아들을 둔 어떤 어머니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 자식이 산에서 그냥 죽었으면 아무 소리도 못 하는 개죽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아들이 전쟁에 가서 죽은 덕에 신이 됨과 동시에 국가를 위해서 희생한 영혼으로 죽어서도 추앙을 받고 있다. 나는 이것을 하나의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즉 전쟁을 수행하고 국가를 위해서 죽은 자식의 죽음을 자랑스러운 일로 느끼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추도라는 것은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를 표함으로써 죽음과 직면하는 과정인데, 야스쿠니라는 시설은 사랑스러운 가족의 죽음을 슬픈 일이 아닌 자랑스럽고 기쁜 일로 받아들이게 한 것이지요. 이를 두고 도쿄대의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는 야스쿠니라는 시설이 슬픔을 기쁨으로 만드는 감정의 연금술 같은 일을 해왔다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1978년, 야스쿠니 신사에 도쿄재판에서 사형을 받은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되어 있다는 게 발표되면서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천황을 위해서 전쟁에서 죽은 자들'이 야스쿠니에 합사되어야 한다는 대원칙이 어긋난 것입니다. 물론 A급 전범들이 천황을 위해 대신 죽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전쟁의 책임자는 천황이고, 천황이 도쿄재판에 기소되어 사형을 받아야 하는데 기소가 면제되었지요 그 대신 전시 내각의 수상이었던 도조 히데키(機)를 비롯한 A급 전범들이 도쿄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일본 보수세력은 천황을 위해서 대신 죽었기 때문에 A급 전범들이 야스쿠니에 합사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정작 천황 자신은 이와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야스쿠니 문제를 보는 하나의 중요한 지점이기도 합니다.
다음 사진은 '도미다 메모'라는 것입니다. 도미다 아사히코(朝彦)는 천황을 보좌하는 국내청장관으로 천황의 비서였지요. 이 메모에는 A급 전범이 합사된 이후 천황이 한 번도 참배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1989년에 죽은 히로히토(쇼와 천황과 생전 퇴임을 한 현재의 상황(上皇) 아키히토 천황은 1978년 이후 한번도 야스쿠니에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키히토 천황이 평화주의자이고 아버지의 전쟁에 대해서 반성을 했기 때문에 야스쿠니를 안 갔다는 평가도 있지만, 야스쿠니에 전범이 합사된 것에 불만을 품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천황이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에 간다는 것은 마치 히틀러가 묻힌 곳에 독일 대통령이 참배를 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참배를 하는 것은 전쟁을 미화하는 것이며, 포츠담선언을 거부하는 것이고, 도쿄재판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천황은 현 상황에서는 야스쿠니 참배할 수 없다고 의사를 명백히 표명한 것입니다. 천황이 가지 않기 때문에 지금 야스쿠니는 불합리한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 수상들이 야스쿠니를 참배했지만, 야스쿠니 측에서는 이를 별로 반기지 않습니다. 야스쿠니의 본래 정신과 어긋나기 때문이지요. 야스쿠니가 제일 바라는 것은 천황이 다시 오는 것입니다. 천황이 참배해야만 야스쿠니가 본래의 모습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이영재, 한홍구, 창비, 2020. 5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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