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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계엄설계자', 6년 전 불명예 제대,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프로필 및 경력

by 길찾기91 2024.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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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41기 수석

대전고등학교

문경중학교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85~ 2018

임관 육군사관학교 (41)

최종 계급 소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육군정보학교장

주요 보직 국군정보사령관

 

777사령관

대통령경호실 군사관리관

7보병사단 5연대장

육군참모총장, 비서실 정책과장

7보병사단 정보참모

7보병사단 수색대대장

수도방위사령부 제55경비대대 대위

 

 

 

- '계엄 비선'으로 지목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검찰에 송치되면서 침묵을 지켰다. 경찰이 확보한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는 'NLL에서 북 공격 유도' '사살' '정치인·언론인·판사 수거(체포) 대상'이라는 표현이 있어 파장을 일으켰다.

노 전 사령관은 이날 오전 817분쯤 일명 '군밤 장수 모자'로 불리는 털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서울 중앙지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사살 대상은 누구인가" "북한 공격은 어떻게 유도하려 했나"는 뉴스1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돌려 노려봤다. 다만 청사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은 이날 오전 비상계엄 관련 내란실행 및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 노 전 사령관을 서울 서부경찰서에서 서울 중앙지검으로 구속 송치했다.

이날 오전 721분쯤 서부경찰서 지하 1층 유치장 밖으로 나온 그는 "메모는 누구와 상의했나" "비상계엄 윤 대통령이랑 직접 소통했나" 등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노 전 사령관은 박근혜 정부 당시 정보사령관을 지냈던 인물로, 비상계엄 선포 이틀 전인 지난 1일과 3일 두차례에 걸쳐 경기도 안산의 한 햄버거집에서 문상호 정보사령관 등과 만나 계엄을 사전 모의한 혐의를 받는다. - 뉴스1 2024.12.24.

 

 

 

- '12·3 비상계엄' 기획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수첩에 '사살'이라는 표현도 쓰인 것으로 파악됐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등에 대해 수거 대상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사살이라는 표현이 있었느냐", "사실에 부합하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 질문에 "사실에 부합한다"고 답했다.

우 본부장은 수첩에 오물풍선에 관한 표현도 있었느냐는 질의에는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경찰 특별수사단은 이날 노 전 사령관의 거처에서 확보한 수첩에서 '북방한계선(NLL)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라는 메모가 있었다고 밝혔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북한의 쓰레기 풍선 살포 지점에 대한 원점 타격, 우리 무인기의 평양 상공 투입 등을 지시했다는 보도를 근거로 김 전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을 고발한 바 있다.

경찰은 이와 함께 노 전 장관의 수첩에 '국회 봉쇄'라는 표현이 적시됐으며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노조, 판사, 공무원 등을 '수거대상'으로 지칭하고 판사 등 일부 대상자는 실명을 기재했다고 전했다.

수거는 체포의 의미로 해석된다. 이들에 대한 수용 및 처리 방법에 대한 언급도 수첩에 담겼다.

경찰은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은 손바닥 크기의 6070페이지 분량으로, 계엄 관련 내용이 다수 적혔다고 설명했다. - 연합뉴스 2024.12.23.

 

 

 

- 12·3 비상계엄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육사 38)과 사전 모의한 혐의를 받는 인물 중에는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육사 41)이 포함됐다. 군에서 불명예 전역한 민간인인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35년에 걸친 친분을 바탕으로 군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평가된다.

노 전 사령관은 1981년 육군사관학교 41기에 수석으로 입학했지만, 임관 초기엔 크게 주목을 받는 장교가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인성이 좋지 못하다'라는 평가를 받는 등 동료 간부들과는 불화가 잦았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의 군생활은 김 전 장관과 만나면서 결정적인 변화의 순간을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1989년 무렵 김 전 장관이 소령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경호하는 수도방위사령부 제55경비대대 작전과장을 맡을 당시 노 전 사령관은 55경비대대에서 대위로 근무했다. 지금부터 35년 전 이미 두 사람은 인연을 맺은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육사 38기의 대표주자로 소위 '잘나가는 군인'이었다. 그는 동기 중 유일하게 1차로 중장에 진급했고 수도방위사령관(2013~2015),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2015~2017)을 역임했다. 비록 대장 진급엔 실패했지만 군 생활 내내 주류에 속했고, 노 전 사령관은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2007~2008년 김 전 장관이 박흥렬 전 육군참모총장(육사 28)의 비서실장을 하던 시절 국가정보원 파견 근무를 하던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의 추천으로 비서실 산하 정책부서의 과장급으로 근무하게 됐다.

이후 노 전 사령관이 박근혜 정부 시절 경호실 군사관리관을 할 때, 경호실장은 박흥렬 전 총장이었고, 김 전 장관은 대통령 경호 업무와 밀접한 수방사령관을 맡았다. 이때도 김 전 장관과 노 전 사령관이 가까이 지냈다는 얘기가 나온다.

군 소식통들은 "두 사람은 서로 성향이 맞았다"라고 입을 모았다. '자기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던 김 전 장관은 각종 정보와 풍문을 수집해 보고하는 노 전 사령관의 업무 스타일을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정보 보고서를 잘 쓰는 친구'라는 평가를 받던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의 동기생 등 선배들에게도 자신의 정보를 적극 제공했고, 주변에서는 '윗사람을 모시는 재주가 탁월하다'라는 말이 나왔다.

다만 노 전 사령관에 대한 군내 평판은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육사(48) 후배이자 김 전 장관의 '충암파' 라인으로 분류되는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은 비상계엄 이전에 "노상원과 가까이 지내지 말라"라고 김 전 장관을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장관과 노 전 사령관의 군내 인연은 2017~18년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김 전 장관은 201711월 전역했고, 노 전 사령관은 2018101일 국군의 날에 여군을 성추행한 혐의로 징역을 선고받고 불명예 전역했다.

두 사람이 각각 민간인이 된 이후에도 친하게 지냈는 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2021년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새로운 기회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대선캠프에 들어가 초대 대통령경호처장에 임명된 김 전 장관은 '국방상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군 인사를 좌우한다는 평가를 들었다.

특히 지난 9월 김 전 장관이 공식적으로 국방부의 수장이 된 이후 노 전 사령관은 '인사 민원이 있으면 얘기하라'라고 주변에 과시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최근 김 전 장관과 하루 한 차례 통화했고, 비상계엄 선포 사흘 전인 지난달 30일엔 서울 한남동 국방부 장관 공관에서 대면했다.

이번 비상계엄과 관련해서도 노 전 사령관은 현역 장성들에게 사실상 지시를 내렸다. 김 전 장관이 직접 노 전 사령관에게 연락하라고 하거나,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의 뜻"이라며 말을 전하는 식이였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은 햄버거집 회동에서 "계엄이 곧 있을 테니 준비하라"라고 하거나, 정보사 인사들에게 부정선거와 관련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를 확보하라고 지시한 정황도 파악됐다. 아울러,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와 별도로 방첩사 합동수사단 내에 편제에도 없는 제2수사단을 꾸려 김 전 장관과 계엄을 모의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 뉴스1 2024.12.21.

 

 

 

- 6년 전 불명예 제대한 노상원(62·육사 41)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12·3 불법계엄 사태의 '막후 설계자'로 지목되고 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계엄을 모의했고, 현직 사령관에게 "선관위를 장악하라"'계엄의 밤'을 준비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수사기관에서도 "퇴역 군인이 주도한 희대의 군정논란"이라며 혀를 찰 만큼 그의 존재감은 상당했다.

'위만 쳐다보는 사람, 후배들의 기피 대상, 김용현의 심복'. 노 전 사령관을 현역 시절 가까이서 지켜본 전·현직 군인들은 그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계엄 사태 역시 그가 권력욕과 출세욕에 사로잡혀 존재감을 과시하려다 깊숙이 관여했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경북 문경 출생인 노 전 사령관은 대전고를 졸업한 뒤 1981년 육군사관학교 41기에 수석 입학했다. 보병 병과로 군생활을 시작했지만 소령 때 정보 병과로 갈아탔다. 이 무렵 '노용래'에서 '노상원'으로 개명했다. 김용현 전 장관과 함께한 첫 근무지는 수도방위사령부 55경비대대(55경비단)로 알려졌다. 55경비대대는 청와대를 경호하는 근위부대로, 두 사람은 김 전 장관이 1990년 무렵 소령으로 이곳 작전과장을 맡을 때 노 전 사령관(당시 대위)이 제대장을 맡아 연을 맺었다. 두 사람과 함께 근무한 예비역은 "둘이 죽이 정말 잘 맞았다"고 회상했다.

노 전 사령관은 탁월한 심기 경호로 김 전 장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두 사람과 인연이 있는 군 관계자는 "김 전 장관이 대대장에게 잘 보이려고 후배들을 쥐어짜면, 노 전 사령관은 이에 동조해 부하들을 강하게 쪼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예비역은 노 전 사령관을 "사람 자체가 '흑백'이라서 중간이 없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인정하는 부하에겐 전폭적으로 일을 맡기고,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반 죽여서 짓밟았다"고 평가했다.

김 전 장관은 2007년부터 박흥렬 전 육군참모총장의 육군본부 비서실장으로 일했고, 김 전 장관 추천으로 노 전 사령관은 비서실 산하 과장급으로 근무했다. 이 무렵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의 수족처럼 일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을 잘 안다는 군 관계자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했고, 인맥과 라인을 만드는 데 열중했다"고 했다. 특히 김 전 장관을 통해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어해 후배뿐 아니라 동기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안 좋았다는 전언이다.

 

노 전 사령관은 7사단에서 대대장과 연대장을 거친 뒤, 육군참모총장 수석전속부관, 대통령경호실 군사관리관, 777사령관, 정보사령관 등 핵심 보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18년 육군 정보학교장을 마지막으로 불명예 전역했다. 그해 국군의날에 여군 교육생을 강제추행해 징역 16개월을 선고 받아 군복을 벗었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은 '산에 들어가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한 예비역은 "전역한 뒤 노 전 사령관이 생계를 위해 '죽은 뱀에서 나온 구더기를 먹인 닭(이른바 '뱀닭')을 팔았다고 안다"고 전했다. 최근엔 경기 안산에서 점술가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났다.

군복을 벗은 뒤 군과 절연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오히려 '핵심 비선'으로 자리 잡았다. 자신이 사령관을 지낸 정보사의 OB(전직 간부) 모임을 주도한 흔적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특히 김 전 장관이 올해 9월 장관으로 취임하자, 군내에선 노 전 사령관 이름도 함께 회자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노상원 라인'으로 불리는 배모 준장이 김 전 장관 인사청문회 준비단에 들어갔을 때 '낙하산'이라는 말이 많았다"고 말했다. "배 준장이 그뒤 요직인 연합사 작전처장이 된 것도 노 전 사령관 입김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롯데리아 내란 모의'에 불려 나온 문상호 정보사령관과 현직 대령 2명 역시 노 전 사령관의 '인사 영향력'을 의식했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문 사령관은 올해 여름 '블랙요원 리스트 유출 사건'과 자신이 연루된 '하극상 사건'으로 직무 배제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김 전 장관의 취임과 맞물려 유임됐다. 군 소식통은 "문 사령관 인사에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노 전 사령관이 승진을 약속하며 현직들을 끌어들였을 수 있다"고 했다. 정보사가 점조직인 탓에 OB들이 노 전 사령관처럼 '블랙요원'으로 활동하며 인사에 개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수사 중인 공조수사본부 내부에선 "희대의 군정논란" "최악의 군기문란"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정보사 내부에서도 "조직이 쑥대밭이 됐다"고 아우성이다. 모든 게 노상원 전 사령관이 남긴 짙은 그림자다. - 한국일보 2024.12.21.

 

 

 

- 경상북도 문경시 출생으로 문경중학교와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육군사관학교(41)에 수석 입학했다. 보병으로 임관 후 소령 때 정보 병과로 전환했다. 이후 국가정보원과 청와대로 파견 근무를 거쳤다. 준장 시절 1년간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경호실에서 군사관리관으로 1년간 파견 근무 이후, 정보사령관에 취임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어떠한 공직도 맡은 적이 없고 언론에도 나온 적이 없으나, 계엄사태 이후 그의 영향력이 드러나면서 비선실세가 아니었는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정보사령부의 OB에 해당하며,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의 최측근으로서 계엄령 초안 작성 등 예비역 민간인 신분임에도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의 핵심 수뇌부 역할을 수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MBC NEWS 보도와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에 따르면, 육군사관학교 3기수 선배인 김용현과 계엄 전후로 자주 통화했으며, 문상호 정보사령관에게 김용현을 소개해준 인물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고위공직자도 아닌 민간인, '시민'으로 간주되는 사람이 계엄 모의에 깊이 관여한 사례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군에서 불명예스러운 일로 전역한 사람이 여전히 군내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초급 장교 시절부터 군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켰으나, 육사 출신이 군 고위직을 점하고 있는 육군 특성으로 인해 선배들이 비호했고 결국 별까지 달았다고 한다. 군내 하극상을 두 번이나 일으켜서 전역 위기에 몰렸으나 그때마다 육사 출신 선배들의 비호로 잠시 한직을 받았다가 바로 요직으로 복귀했다고 한다. 원래는 보병 병과였으나, 소령당시 정보 병과로 바꾸었는데, 대체로 군고위직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보병보다 불리하기 때문에, 이 또한 사고 수습 무마용일 가능성이 있다.

7사단에서 대대장과 연대장을 거쳤는데, 좋지 못한 인성으로 온갖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트러블메이커여서 부하 간부들과 병사들은 물론 동료 간부들에게조차 평이 매우 안 좋았다고 전해진다.

군에서 30여년간 근무하면서 소장이라는 군 고위직까지 올라갔으면, 함께 근무했던 부하나 동료로부터 전해지는 이런 저런 미담 하나는 남기기 마련인데, 노상원은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엮이는 것을 기피했다는 보도가 있을 정도로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다.#

심지어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진술에 따르면,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 노상원과 친하게 지내자 노상원만큼은 가까이 지내면 안된다라고 수 십차례나 간언을 했을 정도라고 할 정도이며 "노상원과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보사령관 시절, 운전병에 대한 갑질 논란으로 그 당시 박찬주 대장 건으로 군대 내 갑질로 한창 시끄러울 때 함께 언급된 적이 있었다.

 

2018101일에 육군정보학교장 시절 교육생 부하 여군을 성추행한 혐의로 보직해임되었다. 이후 구속되었으며 2018126일 육군본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제한 3, 징역 1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1심 선고 이후 항소했으며, 2019319일 고등군사법원에서 징역 1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장성급 장교 사이에서도 그가 부대 내 여군 교육생들에게 자꾸 집적대는 소문이 있었으며, 결국 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성폭력 전과가 없고 직업에 따른 불이익이 크다는 이유로 성범죄자 공개 및 고지 명령은 면제되었다.

본인은 '좌파정권의 찍어내기 때문에 군에서 쫓겨났다.'고 생각해서 한을 품었다고 하는데, 당시는 미투운동 때문에 안희정, 오거돈 등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더 많이 처벌받거나 낙마했다. 오히려 초급간부 시절부터 사고 친 것을 육사 출신의 윗선에서 여러번 무마해준 것에 익숙해져서 자신이 "좌파정부"에게 불이익을 받았다는 피해망상을 품게 된 것으로 보인다.

 

불명예 제대 후 반성하며 얌전히 살기는커녕 악행을 멈추지 않고 본인이 오랜 세월 정보계통에 몸 담아 왔던 인맥과 경험을 살려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과 같은 내란 중요 임무 종사자들과 부적절하게 접촉하면서 함께 기획하고 공모해 왔다. 즉 군내 용현파의 대표적 인사였다.

12.3 사태에서 국회의원을 체포하거나 혹은 정체불명의 목적으로 악용하기 위해 본인이 비밀리에 관리하고 있던 예비역 정보사 특수요원들을 섭외한 것으로 드러났다.

선관위에 침입시켜 불법 증거수집을 지시한 것도 드러났다.

또한, 123일 계엄령 선포 당시 계엄사령관 박안수 대장의 직함으로 배포된 포고령도 사실 본인이 작성하였다는 의혹이 있다.

군복무 당시 인격적 문제로 여러 군후배나 부하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전역군인이라는 자유로운 신분을 이용하여 계엄령 가담자들을 적극 모집했다. 노상원은 자신이 윤석열 정부의 실세였던 김용현의 대리인이라는 것을 내세우며 승진을 걸고 공식계통이 아니라 인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군인들을 포섭한 것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되기 이틀 전인 121일 국군 정보사령부 간부 3(당시 정보사령관 문상호+정보사 대령 2) 과 경기 안산시에 있는 롯데리아 상록수점에서 만나 계엄을 사전에 논의한 정황이 확인됐다. 계엄 선포 사흘 전 김용현 국방장관과 만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계엄 전 미리 상황을 관리할 장교를 모집하고 다녔다는 의혹이 있다. 조건은 '영남 출신' 소장.

윤석열이 대선출마 전 꾸렸던 윤석열 캠프에서 그를 봤었다는 사람이 있다. 정보사 예하부대에 출퇴근하면서 군 무기사업에 관여하거나 , 전현직 정보요원들을 관리하며 우회공작부대 , 계엄기획단 , 김용현 국방부장관 산하 계엄수사단 등을 조직기획했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결국 1215일 경찰에 의해 내란혐의로 긴급체포되었고 18일에 구속되었다. 비상계엄 당시 군 수뇌부 5인과 경찰 수뇌부 2인에 이어 8번째로 구속된 인물이다.

 

불명예전역이기 때문에 군인연금 등 전역군인이 받을 수 있는 각종 혜택도 박탈당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로 인한 생활고 탓인지 전역 후에는 놀랍게도 안산 보살로 일했다고 한다. 심지어 동료 무속인은 노상원을 신기가 있는 보살님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롯데리아 안산 상록수점에서 계엄모의를 한 이유가 노상원 자택에서 가깝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불명예전역 후 무속인을 만나 동거, 동업하며 무속인의 바라지로 살아왔다고 한다. 자택으로 등록된 거주지가 바로 이 무속인의 점집으로 계엄이 선포된 123일에도 노상원이 자택에 머물러 있었다고 한다. 노상원은 정보사에 재직 중일 때도 10여년간 사주 명리학을 공부하였으며 그러한 인연으로 무속인과 함께하게 된 것이라 한다. 이웃 주민들은 노상원도 남성무속인으로 여겨왔으며 유난히 고급 차량이 노상원의 자택을 찾아오기도 하는 일이 몇차례 있었다고 제보하였다.

주변의 시선과는 별개로 신내림을 받았다고 구체적인 사실이 밝혀진 것이 없기에 무속인이 아니라 '자칭 역술가'로 보아야 할 듯. 사주 명리학에도 전문교육기관의 학위가 있어서 함부로 독학했다고 사칭하는 것을 쉽게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위치의 노상원이 무속인들의 주변에 머물며 그 주변 일을 돌봐주어온 것 또한 그가 정식 역술가나 무속인이 아니더라도 무속적인 삶의 행보를 살아온 것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주변에 여러 무속인들을 가까이 두어 주술로 신성한 민주주의 정치를 농단하고 무당의 신점 사주로 인사권 전횡까지 일삼았다던 윤석열, 김건희 부부가 위헌적 계엄을 시도하며 활용한 블랙요원이 또 무속인이라는 데에 많은 국민들이 충격과 허탈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2년 전 노상원의 점집을 방문했던 한 손님은 "저를 꿰뚫는 느낌이었다. 제 친구도 같이 봤는데 곧잘 맞히시더라. 말하지 않아도 거의 맞히셔서 용하긴 했다"라면서도 "뭔가 기분이 찜찜하고 신점이라는 것을 다신 보고 싶지 않아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노 전 사령관에게 신점을 봤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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