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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를 걷다

터덜터덜 배낭여행 0 - 베트남 자유여행, 그 시작

by 길찾기91 2020.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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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작

 

이 여행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다.

대학 1학년에 만나 30여년을 교류해온 친구와 어느 날 나눈 대화.

 

“난 배낭여행을 가고 싶어.”

“다 늙어서 웬 배낭여행?”

“애들은 다 가는 여행을 우린 가보지도 못하고 살았잖냐. 이제라도 해보면 좋지 뭐.”

“그건 그러네”

“우리 청년 때는 이런 기회가 없었잖냐”

“그렇지”

“애들 여행간다 하면 잘 보내줬는데 정작 나는 그걸 안해봤더라구”

“애비 맘이 다 같지 뭐. 우리 애들은 외국가는걸 어려워하지 않더라구”

“언젠가 가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치?”

“그럼 같이 가자”

“그래? 좋아좋아”

“어. 그러려면 건강 잘 챙겨야겠네. 놀기 위해서라도”

“당연하지. 더 나이 들기 전에 떠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근데 그게 가능할까 몰러.”

“김새게 할래?”

“어 미안미안 ㅋ”

 

이런 대화를 나눈 일은 있으나 구체적인 추진은 안하던 지난해 연말.

인터넷 서핑을 하던 한 친구는 비행일정을 짜고 찾아주는 사이트를 발견한다. 그리곤 두루두루 둘러보다가 눈에 딱 들어온 베트남 보름짜리 비행기표. 425일부터 510일까지 국제선 왕복에 베트남 국내선 두 번이 포함된 항공권. 내용 짱이다. 호치민, 나트랑, 다낭이 다 포함된 일정에 갑자기 설레기 시작한다.

 

바로 다른 친구에게 연락한다.

 

“이 시기에 가능할까?”

너무나 쉽게 온 답변은 “예약하자!”

“헐. 뭐가 이리 쉬워?”

 

이렇게 해서 2018년 새해 첫 날에 예약부터 발권까지 끝냈다. 갈 수 있을지 여부도 파악 안한 채.

 

사실 중년의 우리 나이에 어지간한 형편엔 보름이나 되는 긴 기간 동안 집과 직장을 비우고 가기는 어렵지 않은가. 그러니 사실은 가능한지 여부도 모른 채 덜컥 예약부터 한거다. “최악의 경우 날리지 뭐라는 막연한 배짱으로.

 

그 사이 알게 모르게 위기가 있었지만 배낭 메고 터덜터덜 베트남을 걸어보고자 이겨냈다. 아 장하다. 그리고 4개월 가까이를 기다려 드디어 출발한거다. 고생길이 앞에 있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나름 컨셉도 잡았다. 중년이 청년들 하는 배낭여행을 따라하기로 한거 이왕이면 최소한의 비용으로 청년처럼 다녀보자는. 나중에 알고 보니 요즘 아그덜은 럭셔리 좋아한단다.

 

난 여행이라면 휴식을 의미하는 것이라 우기고 산 사람이다. 그래서 여행지는 동행이 다 정하더라도 숙소는 편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지금껏 버텨온 사람인데 이른바 배낭여행 컨셉을 잡고 나니 숙소도 최저가에 가까운 곳으로 정하는 만용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럭셔리는 물 건너갔고 거지꼴은 면하고 다녀야 할텐데 그게 걱정이다.

 

일단 예매를 했으니 갈 준비를 하긴 해야하는데 당최 뭘 준비해야 하는지 내가 아나. 자유여행 1도 모르는 촌놈들이니. 패키지야 뭐 따라다니다 보면 하루가 간다지만 이건 숙소며 식당이며 둘러볼 곳까지 하나하나 다 알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니 은근 아니 많이 걱정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영어가 되나 베트남 말을 할 줄 아나. 영어는 머리로 배운거라 입이 안떨어질 게 뻔하고 혹 바디랭귀지라도 통하기를 기대하는 하는 입장. 아몰랑 그냥 떠나.

 

베트남 전쟁 30

 

일단 나이든 사람답게 베트남 역사부터 공부한다.

 

가장 먼저 집에 있는 리영희 선생의 <베트남 전쟁>이라는 책을 잡았다. ‘30년 베트남전쟁의 전개와 종결이라는 부제가 붙은 그 책 말이다. 누렇게 퇴색된 데다 글씨는 매우 작아 잘 보이지도 않는 책을 기어이 읽었다. 노안이 온 터라 돋보기를 끼고서. 분명히 대학 때 읽었던 책인데도 새롭다.

 

리영희 선생은 베트남전쟁을 공산주의 세력과 반공산주의 세력 간의 대결로 이해하면 진실에서 거리가 먼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유독 베트남전쟁에서 죽은 군인들을 영웅이 아닌 개죽음이라 봤으며, 미국이 싸운 전쟁 중에 징병기피자가 수십만 명이나 된 유일한 전쟁이란다.

 

베트남 전쟁은 흔히 생각하듯 1960년대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1946년에 시작된 전쟁이다. 그래서 30년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19458월 일본의 점령에서 해방되었다. 과거 인도차이나 반도를 100년간 지배하다가 일본에 의해 쫓겨났던 프랑스가 해방된 베트남을 식민지화하려 군사적 재점령을 시도한 것이 그 시작이다.
베트남은 19548년간의 이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른바 제1차 베트남전쟁이다. 하지만 전쟁에 승리한 베트남은 제네바협정에 따라 남북으로 분단되고 만다. 북위 17도 선을 임시 군사분계선으로 정하고 북쪽은 베트남 인민이, 남쪽은 프랑스연합군이 집결하고 2년 후 총선거를 통해 통일하도록 규정했었다
문제는 약속된 총선거에서 호치민의 승리가 확실할 것으로 예상한 미국이 프랑스를 대신하여 남쪽의 실권을 장악하고 미국에 망명 중이던 고 딘 디엠을 통해 총선거 거부를 선언케 하면서 제2차 베트남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1956년부터 1975년까지의 전쟁이 그것이다베트남 전쟁은 공산주의 대 반공산주의의 대결이 아니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갈등의 요소가 뒤범벅되어 전개된 전쟁이었다. 그것이 “20세기 인류의 양심에 그어진 상처라고 일컬어지는 이유다.
                                                                                                   - <베트남 전쟁> 리영희, 두레, 1985. 6-7쪽 요약.

 

박태균이 쓴 <베트남 전쟁>도 읽었다. 집필 시기가 30년 정도 차이나는만큼 새로운 정보와 기록이 있었다. 겨우 두 권이지만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이해가 생긴 건 분명하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개입한 이후 아주 길게 치열하게 전개된다. 화력이 강한 미국을 등에 업은 남베트남은 결국 패하고 만다. 내부적인 부정부패와 무능력이 크게 작용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친프랑스파로 분류되었던 이들이 남베트남의 권좌를 차지하고 않았으니 시각부터 별로일 수밖에 없다. 남베트남이 망할 때까지 한 명 빼곤 모두 군부 지도자가 권좌에 있었으니 그 단순하고 부패함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전쟁 중에도 군인들은 북베트남과 민족해방전선 측에 무기를 팔아먹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니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늦게 깨달은 미국이 결국 포기하고 만 것이다. 비인간적 비윤리적 행위가 숱하게 벌어지고 부정부패가 만연하는 등 온갖 모순들이 겹쳤고, 국제 상황도 미국의 의도대로 돌아가지 않자 도미노이론을 들이대며 공산주의와의 싸움이라 우기던 미국이 결국은 포기한 것이다. 파리협정에 의해 미국, 남베트남, 북베트남, 남에 있던 민족해방전선 등의 4주체가 휴전하고 전쟁 이후를 준비하기로 했었으나 여전한 불신과 협정 위반 사례들이 속출한 끝에 북베트남이 남에 있던 민족해방전선과 힘을 합쳐 최종적으로는 남베트남을 접수한다. 19766월 하노이에서 열린 통일국회는 72일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을 결의한다. 이는 정치적, 법적으로 남베트남의 북베트남에 의한 병합형식이다.

 

저항의 역사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인터넷을 통해 베트남 역사를 훑어봤다. 참 강인한 나라다. 무려 네 번이나 강대국의 침략에 대항해 승리한 역사를 가진 나라다. 보통 나라는 분명 아니다.

 

가장 먼저는 1284년 몽골과의 전쟁이다. 당시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진출했던 무적의 쿠빌라이 제국 군대는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유일하게 베트남만 점령하지 못했다. 우리의 이순신 장군 정도로 추앙받는 쩐흥다오 장군이 이끄는 부대가 몽골 침략군을 두 차례에 걸쳐 격퇴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1954년 프랑스 제국주의 군대를 물리친 디엔비엔푸 전투가 있다. 19세기 리 왕조가 통치하던 베트남은 1885년 프랑스의 침략을 받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편입된다. 50여 년간 식민통치를 하던 프랑스가 1940년 독일 나치에 패하면서 베트남에서의 영향력이 약해지자 이 틈을 타고 일본이 진주한다. 당시 베트남은 호치민이 주도해 베트민(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세우고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베트민은 19458월 혁명을 통해 외세를 몰아냈지만 프랑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났으니 베트남이 다시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며 극동원정군을 파견했다. 1954년 호치민은 프랑스군을 상대로 한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1만여 명을 포로로 잡는 대승을 거두고 독립을 달성한다. 이 전쟁은 역사상 처음으로 식민지 군대가 제국주의 군대를 격파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세 번째는 이 때부터 시작된 미국과의 전쟁이다. 앞에 언급한 베트남 전쟁이 그것이다. 프랑스를 물리친 베트민이 공산주의를 표방하자 미국이 도미노 이론을 내세워 개입한 것이다. 이른바 제네바 협정으로 17도선을 경계로 분단된 베트남은 이후 20년간 미국과 전쟁을 벌였다. 이 기간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국제 여론을 무시하고 베트남에 100t의 폭탄을 퍼부으며 55만명을 파병한 미국은 끝내 1973년 베트남전 패배를 인정하고 철수 길에 올라야 했다. 미국이 손을 뗀 베트남은 1975년 북베트남에 의해 통일을 맞았다.    
네 번째는 전쟁은 1979817일 덩샤오핑의 중화인민군이 베트남을 전격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중국은 베트남 국경 26개 지점을 통해 보병 20만 명, 항공기 170, 탱크 200여 대를 동원해 대대적으로 침공했다. 명분은 한 해 전 캄보디아에서 킬링필드를 주도하던 폴포트의 크메르루주 독재정권을 베트남이 무력으로 전복시킨 데 대한 보복이었다. 당시 중국은 폴포트 정권의 후견인 노릇을 하고 있던 터라 같은 사회주의권 국가이면서도 베트남을 침공한 것이다. 17일간 계속된 이 전쟁에서 중국은 사망자 26000여 명을 낸 채 퇴각했다. 당시 이 전투를 지휘한 베트남 지휘관은 보응우옌잡 장군으로 그는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의 사령관이기도 했다.
                                                                         -
베트남, 그 강인한 역사, 정희상, 시사인 332(2014. 2. 7) 요약 인용.

 

뭔가 아주 조금 감이 온다. 내가 그런 나라로 가는거구나. 수 많은 외침에 시달렸다는 점과 같은 때에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점 등의 공통점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보다 더 강인한 측면을 발견할 수 있었던 베트남 역사 공부. 일단 이 정도의 인식은 먼저 머리에 넣어두고 여행 준비 시작.

 

이제 여정을 살펴봐야겠다.

 

플라이트그래프에서 예매한 항공권은 인천에서 호치민, 나트랑, 다낭을 경유하여 인천으로 오는 여정이다. 베트남항공의 국제선 왕복항공권에는 국내선 2회를 탈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해서 만들어진 여정이다. 다낭에서의 일정이 길어 중간에 하노이를 다녀오고자 현지 저가항공인 비엣젯항공 왕복권을 별도로 끊었다. 워낙 길게 생긴 베트남의 지형상 버스나 기차로 이동하는 건 시간적인 낭비가 심하다는 생각에 나름 머리를 쓴거다. 결국 도합 6번 비행기를 탄다.

 

아주 길고 가늘게 생긴 지도상의 베트남을 보고 남부에서부터 북부까지 순서대로 이동하려는 계획이다. 호치민, 나트랑, 다낭, 하노이. 물론 그 사이에는 무이네와 호이안 방문도 일정에 넣었다. 무이네에 가는 길은 슬리핑버스로 5시간씩 왕복 10시간을 타야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이름 그대로 슬리핑버스라니까 일단 믿어 본다. 딥슬리핑이 될지 안될지는 가보면 알 일이지만.

 

경기 광명에 사는 놈과 경남 사천에 사는 놈이 인천에서 오전 비행기를 타려니 일단 전 날 만나야 했다. 안그래도 보름이나 지겹게 같이 먹고 자고 볼 놈인데 하루를 더 자야하다니. 큰 슬픔이지만 현실이니 받아들이기로 한다. 사실은 이 촌놈이 호텔을 잡겠다고 해서 못이기는척 내가 넘어간거라는 건 비밀이다.

 

가기 전에 나름 준비한답시고 여행블로그를 찾아봤다. 좋은 정보의 보고였다. 소소한 정보까지 담긴 온갖 블로그의 글들을 섭렵하고 나니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가봐야 아는거지만. 하여간 참 많은 정보들이 있어서 도움을 받았다. 고마운 블로거들이다. 혹 삘 받으면 나도 좋은 정보를 열심히 남겨야겠다는 약간의 의무감이 생겼다.

 

일단 숙소를 정해야했다. 가서 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뭐든지 다 준비해 놓아야 안심이 되는 중년인 나로서는 견딜 수 없는 일. 1월부터 호텔예약사이트를 드나들었다. 현지에서 보고 정하는 것이 아니니 일정 정도는 모험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름은 후기들을 읽어보며 여러 가지 모양으로 분석하고 판단하면서 물망에 올려놓은 호텔들을 지워가며 정했다. 기준은 싸고 괜찮은거. 말이 되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그랬다.

 

미리부터 살펴보면서 한 도시마다 몇 개씩을 후보로 올려두고 잊고 지내다가 4월이 되어 보니 우리가 가는 해당일에 더 이상 방이 없는 곳이 속출한다. 허걱. 이제 정말 급해졌다. 하루 날을 잡아 죄다 예약해버렸다. 예약 확정 메일이 줄줄이 들어온다. 이제 안심이다. 친구에게 말했다 가서 호텔이 후졌느니 아니니 말하지 말라고. 내가 나름 엄청 고생하며 선택한거라고. 이 친구는 착해서 아무 말 안할거다. 아니 그게 아니고 지는 아무 준비를 안하고 전권을 내게 주었으니 못 따질거라 판단했다. 근데 괜찮긴 해야할텐데...

 

숙소를 다 정하는 대역사를 마무리 한 후엔 나름 돌아다닐 곳을 선정해야 하는 순서.

 

이제부터 다시 블로그를 살피는 시간. 각 도시마다 가볼 곳에 대한 정보는 무한이고 골라야 할 입장. 일단 여행사에서 가는 패키지 프로그램에 들어있는 관광지가 어디인지부터 찾아봤다. 그 도시에서 나름 가장 유명한 곳일테니까. 패키지로 가는 곳을 다 살핀 후에는 자유여행객들이 가는 곳들을 정리해봤다. 크게는 다르지 않지만 자유여행객들의 블로그에는 조금 더 상세한 내용들이 담겨있었다. 대략 갈만한 곳의 리스트를 정리했다. 물론 이 곳들을 다 가는 건 아니다. 컨디션 따라, 날씨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으니 꼭 가거나 하고픈 것은 별도 표시해두고 정리한 리스트. 나름 괜찮다는 자부심. 실행만 남았다.

 

맛집에 대한 글도 넘친다. 다 찾아보고 든 생각은 이 입맛은 천차만별이라 같은 곳에 대한 평가도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 그러니까 유명하다고 다 좋은 건 아닐터. 그래서 그냥 참고만 하고 가급적 현지로컬식당을 이용해보려는 용감한 결정. 분명히 이건 잠정적인 결정이다. 최악의 경우 뱃살 좀 빠져서 오겠지 뭐. 아니 이거 최상인건가?

 

베트남 지도

 

* 이 글은 2018년 4월 26일부터 5월 10일까지 베트남 자유여행을 다녀온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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