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0200725)은 한양도성길 일부를 걸었다. 숭례문에서 돈의문(서대문)을 거쳐 창의문(북소문)까지.
쓰리고(걷고읽고먹고) 모임은 아니지만 한 명은 겹치는 우리만의 다른 소모임. 이름은 없다.
4월에 이어 간만에 다시 뭉쳤다.
숭례문 앞 해장국집에서 꽤 늦은 점심을 먹고 출발한 길이다. 식전까지는 흐린 하늘이더니 걷기 시작할 즈음부터는 땡볕이다. 은근 걱정되지만 그렇다고 걷기를 포기하지는 않을 터.
숭례문 길 건너부터 덥다. 이 놈의 팔자야.
상공회의소 옆 길로 걷기 시작하니 가끔은 바람도 분다. 신기하고 고마운 일^^
도심의 마천루를 걷는데 표지판은 여전히 한양도성길이라 써 있다. 그 옛날 이 길이 그 길이었다는걸 알려준다. 주말이라 도심에 사람이 거의 없다. 별게 다 신선하게 느껴진다.
꽤 걸었다 싶었지만 알고보면 얼마 안되는 거리에 서대문교차로가 있고, 가는 동안 경찰기념공원이 보인다. 여기서 강북삼성병원 방향으로 걸어가다보면 마주한 농업박물관과 4.19혁명기념회관을 지나게 되고 결국 돈의문박문관마을에 다다른다. 농업박물관 앞에는 김종서 집터가 있다.
위의 사진이 돈의문박물관마을인데 그 앞이 돈의문이 있던 자리다.
한양도성의 서쪽 큰 문, 서대문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돈의문은 1396년 처음 세워졌으나 1413년 경복궁의 지맥을 해친다는 이유로 폐쇄되었다가 1422년 현재 정동 사거리에 새롭게 조성되었다. 이때부터 돈의문에는 새문新門이라는 별칭이 붙었고, 돈의문 안쪽 동네는 새문안골, 새문안 동네로 불렸다. 1915년 일제는 도시계획이라는 명목 아래 도로확장을 이유로 돈의문을 철거하였고, 돈의문은 서울 사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이야기로만 전해지는 문으로 남게 되었다. - 돈의문박물관마을 홈피
돈의문박물관마을의 의미가 난 고맙다.
생각해 보면 이곳을 기념하여 보존하지 않았다면 결국 아파트만 늘었을 게 아닌가. 지나간 100년을 돌아볼 수 있는 일상적 모습을 남겨두었으니 고마울 수밖에.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이웃한 종로구 교남동 일대와 더불어 2003년 ‘돈의문 뉴타운’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기존 건물의 전면 철거 후 근린공원으로 조성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한양도성 서쪽 성문 안 첫 동네로서의 역사적 가치와 흘러간 근현대 서울의 삶과 기억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이 동네를 획일적으로 철거하고 개발하는 방식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고, 2015년 마을의 원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 돈의문박물관마을 홈피
박물관마을 입구의 전시관에 들어가느라 QR코드 인증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난 이미 공공도서관 출입을 위해 사용해본 터라 문제가 없었지만 처음 사용하게 된 동행들은 시간이 걸렸다. 잠시 번거로운 절차를 거쳤지만 방역을 위해 필요한 일이니 불만은 없다. 그 과정에서 친절하게 안내해 준 분에게 감사한다.
시대별로 달라진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는 각종 안내 시설물들을 통해 새롭게 기억하고 학습한 시간. 어느새 나도 꽤 긴 시간을 공유한 나이가 됐다는 새삼스런 깨달음.
나이 드는 건 좋은 일이다^^
전시관을 나와 마을박물관의 각종 시설물들을 구경하는 동안 시간을 거꾸로 돌린 듯 했다. 나중엔 민속촌이 될거라는 수다를 떨며. 60년대와 70년대의 마을 전경이 보이는 각종 시설물들을 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우리는 역시 50대였다. 과거의 구호도 봤고, 영화 포스터도 봤다. 일제의 엄혹한 시절에 민중의료에 나섰던 분과 선교사의 헌신도 확인했다. 참 고마운 분들.
위 그림이 있는 벽 건물이 박에스더의 집이다. 한국 최초로 서양식 의학을 공부한 여의사인 박에스더가 일했던 병원이다. 아래의 사진에 나오는 보구여관은 박에스더가 일했던 곳으로 한국 최초의 여성병원이다. 여의사가 없던 시절 박에스더를 찾는 너무 많은 환자를 돌보다가 과로 등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보구여관은 정규간호교육이 처음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오늘 이화여자대학교의료원의 전신이다.
이어서 방문한 곳은 스코필드 기념관. 우리식 이름은 석호필.
프랭크 스코필드는 3.1운동 당시 국제정세를 파악해 우리에게 알려주기도 하고, 3.1운동 모습을 해외로 알린 분이기도 하다. 34번째 푸른 눈의 민족대표라 불린다.
아래 사진은 스코필드 기념관에 있는 당시 사용하던 물건들과 그에 대한 소개다.
그리 크지않은 마을이지만 이 마을을 통해 많은걸 볼 수 있었고 생각할 수 있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오가는 동안 벽에 부착된 과거의 포스터와 표어 등은 오늘과 많이 다른 면이라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조름이 오면 팟땃깨어 불먼저 끄고자자. - 내무부
가족잃고 한탄말고 연탄가스 미리막자 - 보사부
암표는 사지도 말고 팔지도 맙시다.
불온삐라를 보면 즉시 신고합시다!
다같이 쥐를 잡자. - 농수산부
구강위생의 날 - 보건부
레트로 감성 만끽한 후엔 서울시교육청 방향으로 방향을 잡고 인왕산 방향으로 길을 나섰다. 어느새 아파트 타운으로 변한 동네 모습에 약간 실망도 했지만 그보단 덥다는 심정뿐. 편의점을 기어이 찾아 비타500 180미리를 선물해 주신 좋은 분의 마음을 생각하며 셋이 드링킹. 진짜 시원하다. 참 고마운 분이다.
인왕산 자락길 방향으로 걸어가는 동안 아주 귀여운 꼬마 녀석이 잠자리를 잡는 모습도 보고, 표지석을 찾으며 살핀 동네 정경이 새롭다. 이 더위에도 녹음이 우거진 길은 다른 세상이다. 어느새 도심을 벗어나 산 길을 걷고 있었으니. 산길과 도로를 왔다갔다 하다보니 많은 것이 보인다.
걷다 보니 단군성전이 보인다. 그래서 들어가봤다.
더위에 지칠 무렵 전망대가 나타난다. 바람까지 시원한 곳.
어느 정도의 높이에 있는 전망대에서 본 서울은 참 아름다웠다. 빽빽히 들어선 주택도 보이지만 멀리 보면 일상에서 만나지 못하는 곳들이 보인다. 하늘은 맑았고 구름은 이뻤다.
인왕산 자락길의 아기자기한 모습을 뒤로 하고 창의문(북소문)에 도착하니 좀 걸은 기분이 든다. 알고 보면 그리 긴 거리는 아니었지만. 윤동주 문학관을 지나 이제 서촌으로 가는 길. 외진듯 하나 오밀조밀 많은 것이 모여있는 동네를 지났다.
계속 걷다보니 청와대 방향으로 갈 수 있단다. 당연히 그 방향을 잡았다. 청와대 건너편의 공간엔 일인시위를 하는 분들도 있고 자유로운 분위기. 불과 얼마 전까지 태극기부대가 집회하던 모습도 떠오르고. 오늘 을지로에서 집회가 있던데 이 분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올 예정인지 경찰이 잔뜩 모였다. 사복도 많이 보이고. 좋은 세상 만나 어르신들이 맘껏(?) 외칠 수 있는 세상이 와서 좋다고 해야하나.
이제 배가 고프다.
평소보다 많은 칼로리를 소모했으니 채울 필요가 간절하다. 해물찜이 땡기는구나. 그럼 가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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