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편 上(상) 11
魏文侯借道於趙而攻中山,趙肅侯將不許,趙刻曰:「君過矣。魏攻中山而弗能取,則魏必罷,罷則魏輕,魏輕則趙重。 魏拔中山,必不能越趙而有中山也,是用兵者魏也,而得地者趙也。君必許之。 許之而大歡,彼將知君利之也,必將輟行。 君不如借之道,示以不得已也。
魏(위)나라 文侯(문후)가 趙(조)나라의 길을 빌려 中山(중산)국을 공격하려 하자 趙(조)나라 肅侯(숙후)가 허가하지 않았다. 趙刻(조각)이 말했다. “임금께서 잘못하셨습니다. 魏(위)나라가 中山(중산)국을 공격해서 땅을 취득하지 못하면 魏(위)나라는 틀림없이 피폐해져서 전쟁을 멈출 것입니다. 魏(위)나라가 피폐해져서 전쟁을 멈추면 魏(위)나라의 국력은 약해지게 됩니다. 魏(위)나라가 국력이 약해지면 우리나라(趙-조)의 국력은 커질 것입니다. 魏(위)나라가 中山(중산)국을 점령한다 해도 우리나라(趙-조)를 건너 中山(중산)땅을 계속 점유할 수가 없습니다. 이 상황은 군대를 출동시키는 것은 魏(위)나라가 되지만 실제 영토를 얻는 것은 우리나라(趙-조)입니다. 그러니 임금께서는 반드시 허락하셔야 합니다. 허락하실 때는 아주 기분 좋게 대하시구요. 그들이 임금께서 이득을 얻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틀림없이 군사행동을 철회할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길을 빌려주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엄살을 피우는 것이 좋을 겁니다.”
① 罷: 疲弊(피폐)해 짐.
이 이야기는 원래 전국시대 범저(范雎)가 주창한 遠交近攻(원교근공-먼 나라와는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는 공격을 한다.)의 이야기인데 이 원칙을 이용한 모사꾼 趙(조)나라의 趙刻(조각)이 魏(위)나라에 어쩔 수 없이 원정길을 양보한다는 함정을 파 놓고 기다리라고 자기 임금을 설득하는 장면이다. 결과론적으로 魏(위)나라는 遠交近攻(원교근공)의 원칙을 무시하고 전쟁을 벌이다 연전연패하여 훗날 결국 秦(진)나라에 의해 멸망을 당한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위의 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비록 함정이라 해도 다른 나라가 자기 나라를 마음대로 지나가게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이미 그 나라에게 굴복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비록 趙刻(조각)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해도 보통은 肅侯(숙후)처럼 행동을 했을 것이다. 어떻게 한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땅을 호락호락 남에게 내준다는 말인가. 길을 빌려달라는 말은 명분일 뿐이다. 그것은 그 나라를 차지하겠다는 말이다.
과거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조정에 대하여 중국 명나라를 치는 데 필요한 길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던 征明假道(정명가도)가 바로 그것이다. 선조 24년(1591) 3월에 통신사 편에 보내온 도요토미의 서신에 들어있던 내용이다. 조선은 단호히 거절했고, 이것을 빌미로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길을 빌려달라는 것은 단지 명분일 뿐, 조선 땅도 차지하고 명나라도 공격하려는 일본의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지금은 어느 나라건 그 주권이 미치는 곳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다. 하늘, 땅, 바다 모두.
道(도) : 길, 인도하다, 말하다.
首(머리수)와 辵(갈착)으로 이루어 진 회의자(會意字).
古文(고문)의 글자 모양은 首(머리수)와 寸(마디 촌)으로 이루어졌지만, 金文(금문)에는 辵(갈 착)과 首(머리 수)와 又(또 우)로 이루어졌으며 후에 導(인도할 도)字가 되었다. ‘머리를 휴대하고 길을 나선다.’는 뜻으로 아마도 이민족(異民族)의 머리를 휴대하고, 외부로 통하는 길을 나아가는 것 다시 말해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는 除道(제도)의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길을 내고 거기에 제사를 지내면서 나가는 그것이 ‘道(길 도)’字의 초기의 뜻이었을 것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道(도)를 ‘所行道也(지나가는 길)’이라 해석하고 글자를 회의자(會意字)로 보았지만 首(머리 수)가 이 글자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제대로 된 해석이 없다.
金文(금문)의 글자 모양에는 行(행), 首(수)로 이루어진 것이 있는데 行(갈 행)은 안과 밖으로 통하는 큰 길을 말한다. 외부세계로 통하는 길은 외족과 그 사악한 靈(령)에 접촉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는 除道(제도)를 위한 의식은 아주 엄중한 것이었다. 途(길 도)는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는 除道(제도)를 위해 余(여- 바늘)를 세우는 모습이고, 路(길 로)는 各(각)으로 구성되었으며 各(각)은 祝禱(축도-기도)하여 神(신)을 강림시키는 모습이다. 또 외부와의 경계 지역인 門(문)에도 주술적인 금지구역으로서 적 지도자의 머리를 매장한 곳이 많았다. 이와 같이 머리는 도로나 관문에서 승리를 기원하는 굿을 할 때 강력한 주술적(呪術的)인 힘을 가진 것으로 생각되었다.
道(도)라는 글자는 머리를 휴대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외지에 부임하여 啓行(계행)을 하는 것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道(도)라는 것은 啓行(계행)의 의식으로 훗날에도 여행할 때의 의식을 道祖(도조)라고 한다. 이와 같이 개척을 한 것이 道(도)고, 사람들이 편안히 다닐 수 있도록 한 것도 道(도)이기 때문에 사람의 행위 자체를 道(도)라고 보아 도덕(道德)이나 도리(道理)의 의미가 되고, 그 術(술-방법)을 道術(도술), 法道(법도)라 하고 존재의 근원인 유일한 것을 道(도)라고 하였다.
道는 고대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는 除道(제도)의 의미에서 시작하여 순서대로 승화하여 결국 가장 심오한 세계를 말하는 단어가 되었다. 術(술)이란 글자도 道路(도로)의 呪詛(주저-저주)를 의미하는 글자이지만 동시에 사유과정을 통하여 그 ‘방법’이란 의미가 되었고, 道家(도가)에서는 합쳐서 道術(도술)이라고 한다.
* 위 글은 김동택의 <한비자와 세상공감>(리체레, 2021)을 옮긴 것으로, 저자의 동의 하에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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